교회의 지도자론 : 이상적인 지도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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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지도자론
1. 교회와 신자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이해
1) 이상적인 지도자상
2) 지도자로서의 교회와 신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2. 교회와 지도자에 대한 신자로서의 이
1) 평신도 운동에 대한 오해
2) 연합운동에 대한 올바른 이해
3) 교회의 지도자에 대한 올바른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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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회와 신자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이해
1) 이상적인 지도자 상
‘이상적인 지도자’ 라는 말은 어지러운 세상 중에서 불빛을 보는 것과 같은 반
가운 표현이다. 이상적인 지도자가 있을 수 있는가? 성경에는 횃불처럼 빛나
는 영원불후의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어 왔음을 말하고 있다. 어느 시대 어느
장소를 막론하고 크고 작은 주님의 종이며 시대의 선각자 이며 백성들을 깨우
는 지도자가 있어 왔다. 그러한 지도자는 오늘에도 미래에도 반드시 있을 것
이다.
한편 SDA가 말하는 지도자란 남은 무리를 주축으로 하여 세 천사의 기별을
전하는 모든 무리들이 세상의 선각자가 된다는 의미에서 지도자의 영역은
세계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협의의 교회 지도자란 교회의 어떤 직책을 맡고 신자들을 위하여 일
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러나 신자들에게는 믿음을 가진 인격자, 성경을 잘
해석하고 교수하는 자, 사생활이나 협력을 위한 관심자 및 상담자, 기타 필요
를 공급해 주는 자들을 지도자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후자를 일컬어 지도자 라고 부르는 관심사를 가지고 있다.
교회란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거룩하고도 그 사명 또한 막중한 것이
사실이다.(딤후 3:15-16 참조) 교회의 지도자는 다음의 말씀에 그 사명과
봉사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
로 주셨으니’(엡 4:11)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심이라’(엡 4:12)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
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엡 4:13)
하나님의 교회의 지도자란
책임과 사명이 크다.
신자들을 올바르게 지도할 의무와 사명이 크다.
감화력이 커야 한다.
모든 일에 솔선수범해야 한다.
전도하는 일에 앞장 서야 한다.
사랑과 연합정신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평화를 사랑하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권위를 행사하려 하지 않고 봉사하려고 해야 한다.
교회에 대한 비젼을 가져야 한다.
늘 향상하고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한다.
창의력이 있고 민첩해야 한다.
말에 흠이 없고 감화력이 있어야 한다.
다른 이의 흠을 찾거나 말하기 전에 다른 이를 칭찬하고 격려할 줄 알아
야 한다.
교만하지 않고 예의 바르며 겸손할줄 알아야 한다.
가정생활의 모본이 되고 자녀를 잘 양육해야 한다.
절제생활을 해야 한다.
기타 사생활에 모본이 되어야 한다.
아마 이렇게 열거된 내용을 살펴보게 되면 좋은 것만 모두 골라서 열거
한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무거움을 느끼거나 회피할 필
요는 없다. 바로 그 이유는 다음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목사가 되면 몰라도 평신도 지도자라고 한다면 의식주 생
활을 위해 매일 보편적인 생활 속에서 활동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렇게
열거한 모범적인 사명이 주어지고 보면 오히려 목사가 하는 일에 비해
서 목회와 사생활이라고 하는 이중적인 사명을 느끼게 되는 것이 사실
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교회의 일감을 맡겨
주신 이가 일할 수 있는 능력도 주실 것을 의심없이 믿을 수 있다는 것
이다. 예수님께서 5달란트, 2달란트를 맡겨주신 것은 그에게 알맞게
주었다고 하기 보다는 그의 능력의 한계점에 다달은 일감을 주신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일들을 해 냈고 그들은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더 남기게 했던 것이다. 또 그렇게 함으로 해서
‘착하고 신실한 종’(마 25:21-22 참조)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따라서
이 말씀은 오늘날 주님의 농원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한 허락과 축복
과 보상도 있는 것이다.
주님의 종으로서의 역량에 벅차다고 느껴지는 어떤 사명일지라도 이
같은 사명이 주님께로부터 보름받은 소명이 될 때에는 이 일을 위해
주님의 능력으로 일하기 때문에 그 일이 마치 사람이 보기에는 불가
능하고 무거워 보일지라도 오히려 기쁨과 즐거움의 봉사가 되고 늘
감명을 소유하는 생활이 되어질 것이다.(요일 5:3 참조) 그래서 ‘우리
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
13)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자는 누구 보다 더 ‘주 그리스도를 섬기’면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그 결과로 말미암아 ‘유업의 상을 주
께 받을 줄 알기’(골 3:23-24 참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와 조건들이 하나님
의 사업과 세상의 사업들을 갈라놓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마치 사람이 보기에는 세상에서 저급하게 보이는 일감 같을지라도 성
소봉사를 위한 교회에서는 성직으로서의 겸손한 마음과 즐거운 봉사
를 드리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오래전에 대한민국 대통령 사절단 일행이 버마에 간 일이 있었는데
아웅산 폭파사건으로 인해 장관들이 여러명 숨진 일이 발생했었다.
이 일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숨진 인사들 중 한 장관에 대한 이
야기 이지만 그가 소속했던 교회의 신자들이 모두 애곡할 정도로 오
래 오래 통곡하며 슬퍼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왜서일까? 장관
인 그가 그 교회의 집사직을 맡아 일하면서 그 바쁜 장관직의 업무
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예배날이 되면 밤이나 낮이나 할 것 없이 어느
누구 보다 일찍 교회에 출석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의자를
정리정돈하고 심지어 바닥을 비로 쓸고 닦으며 출석하는 신자들을
겸손하고도 상냥스럽게 환영하며 인도했다고 한다. 또한 성경을 읽
거나 명상하는 일로 말미암아 교회에 출석하는 많은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감동을 일으켜 교회가 부흥하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
마도 그분은 성직의 의미와 더불어 인생의 참 의미를 그리스도 안에
서 터득하고 실천에 옮기고 산 분이었다고 이해한 것이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같이 빛을 전하면서 감화력을 행사하는 이들이
보이게 보이지 않게 많이 있다. 마치 저마다 보석의 종류가 다르고
색갈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사업의 발전에 있어서 쓰임을
받는 이들의 쓰임새가 다른 것이지만 그러나 중요한 우리의 사상은
이들이야 말로 한결같은 하나님의 쓰시는 보석들인 것이다. 이들이
야 말로 참으로 저들 자신들을 위해서도 보람되고 행복한 사람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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